요즘 나는 20개월 손자의 이유식을 만든다.
“오늘은 우리 손자 뭘 해 먹이지?”
냉장고를 열어보고 이것저것 궁리하며 음식을 만든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조금 다른 사람을 위해 하루 종일 주방에 서 있었다.
87살 우리 엄마.
친정에 가기 전부터 생각했다.
“이번에는 엄마 냉장고를 뭘로 채워드릴까?”
그렇게 시작해서 하나둘 만들다 보니 김치가 4가지, 반찬과 음식이 6가지나 되었다.
배추김치, 나박김치, 파김치, 깍두기.
그리고 연근조림, 메추리알조림, 깻잎장아찌, 콩나물무침, 꽈리고추무침, 쇠고기버섯전골.
총 10가지.
다 만들고 나니 나도 조금 놀랐다.
“나 오늘 일 좀 했네?” ㅎㅎ
엄마가 해주던 밥을 이제는 내가 해드린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너무 당연하게 먹었다.
학교 갔다 오면 밥이 있었고, 김치도 늘 있었고, 냉장고를 열면 반찬이 있었다.
그게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손길이 필요한 일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나도 엄마가 되고, 이제는 할머니까지 되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누군가의 밥을 챙겨준다는 건 그 사람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87세가 된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그 일을 해드린다.
엄마 냉장고를 열어보고,
“김치는 뭐가 없지?”
“반찬은 뭘 해놓으면 잘 드실까?”
생각한다.
참 묘하다.
세월이 흐르면 엄마와 딸의 역할도 조금씩 바뀌나 보다.
김치는 골고루 4가지
이번에는 김치를 넉넉하게 준비했다.
배추김치, 나박김치, 파김치, 깍두기.
배추김치는 밥상에 빠지면 섭섭하고, 시원한 나박김치는 국물과 함께 먹기 좋다. 배추가 얼마나 달고 싱싱한지….내 마음도 달달해졌다.

파김치와 깍두기까지 있으면 그날그날 입맛에 따라 골라 드실 수 있다.
한 종류를 많이 하는 것보다 조금씩 여러 가지를 만들어 놓으면 엄마도 덜 질리고 맛있게 드실 것 같았다.
김치통에 하나씩 담아 냉장고에 넣어놓으니 괜히 마음이 든든하다.
밑반찬도 하나씩
오래 두고 드실 수 있도록 연근조림과 메추리알조림, 깻잎장아찌도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바로 꺼내 드실 수 있게 콩나물무침과 꽈리고추무침도 준비했다.
음식을 하면서 자꾸 엄마 입맛을 생각하게 된다.
“너무 짜지는 않을까?”
“너무 딱딱하지 않을까?”
“이건 엄마가 좋아하시지.”
손자를 위해 이유식을 만들 때와는 또 다른 고민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음은 똑같다.
잘 먹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 하나다.
그리고 쇠고기버섯전골
밑반찬만 있으면 조금 섭섭해서 쇠고기버섯전골도 만들었다.
쇠고기와 여러 가지 버섯, 채소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다른 반찬이 많이 없어도 한 끼를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이런 따뜻한 국물 음식이 참 좋다.
그래서 엄마에게도 한 끼만큼은 따뜻하게 드시라고 준비했다.
엄마 냉장고를 채우고 나니
하루 종일 썰고, 무치고, 끓이고, 담고….
솔직히 힘들었다. ㅎㅎ
그런데 완성된 음식통들이 냉장고에 차곡차곡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좋았다.
며칠 동안은 엄마가
“오늘은 뭐 먹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서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한 살 손자에게 먹일 이유식을 만들었는데, 오늘은 87살 엄마가 드실 음식을 만들었다.
나는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엄마이고, 이제는 누군가의 할머니다.
한쪽에서는 나를 키워준 엄마의 밥상을 챙기고, 또 한쪽에서는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는 손자의 밥상을 챙긴다.
내 인생에서 이런 시간이 올 거라고 젊었을 때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엄마, 맛있게 드세요
어렸을 때 엄마가 내게 몇 번이나 밥을 차려주셨을까.
몇 번이나 김치를 담그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주셨을까.
셀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해드리는 음식 몇 가지로 그 시간을 돌려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엄마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에 친정에 갔을 때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엄마, 이번에는 뭐 해줄까?”
하고 또 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87살 우리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가 해주는 음식 맛있게 드셔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