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네카,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를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책장을 덮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천 년 전 로마 시대를 살았던 철학자의 이야기가 지금의 내 삶과 이렇게 가까이 닿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특히 60대가 된 지금 읽어서인지 젊었을 때라면 그냥 지나쳤을 이야기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시간, 고통, 사랑,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책을 다 읽고 나서 저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돈보다 시간을 쉽게 내어준다
세네카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음에 들어온 것은 시간에 관한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잃으면 무척 아까워합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가격을 비교하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속상해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에는 관대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몇 시간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의 부탁에 내 시간을 내주고, 별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일에는 말합니다.
“나중에 하지.”
젊었을 때는 그 ‘나중’이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행도 다음에 가면 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다음에 만나면 되고, 하고 싶은 일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60대가 되니 ‘언젠가’라는 말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시간이 두려워져서가 아닙니다.
시간이 훨씬 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르다
저 역시 오랫동안 참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직장생활을 하고, 가족을 돌보고, 일을 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늘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바쁘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고, 열심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일정이 가득 차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삶까지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보다 그 하루를 무엇을 위해 사용했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오늘 나는 바빴는가, 아니면 잘 살았는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두 가지 사랑’
그런데 이 책에서 시간에 관한 이야기만큼이나 제 마음에 오래 남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랑에도 서로 다른 모습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사랑입니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품에 안아주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면 그늘로 데려가고, 넘어질 것 같으면 미리 손을 잡아주는 사랑입니다.
울지 않기를, 아프지 않기를, 힘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랑도 있습니다.
스스로 일어나게 하고, 힘든 일을 견뎌보게 하고, 때로는 땀도 흘리고 눈물도 흘리면서 자신의 힘을 발견하도록 기다려주는 사랑입니다.
첫 번째 사랑이 훨씬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람을 더 단단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어쩌면 두 번째 사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자를 바라보면서 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금 20개월 된 손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손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고, 이제는 손자와 보내는 시간이 제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손자가 웃으면 저도 웃게 되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습니다.
넘어질 것 같으면 잡아주고 싶고, 힘들어하면 대신 해주고 싶고, 울면 어떻게든 빨리 달래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네카를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어려움을 없애주는 것일까?”
아이가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조금 어려워하더라도 바로 대신해주지 않는 것.
작은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한번 해보도록 지켜봐 주는 것.
그것 역시 사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할머니인 제가 손자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사랑은 언제나 앞에서 길을 치워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좋은 사람에게도 어려움이 찾아올까
책에서 또 하나 마음에 남은 것은 고통을 바라보는 세네카의 시선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생각합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지만 세네카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어려움을 단순히 벌이나 불행으로만 바라보는 대신, 나를 시험하고 단련시키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에서도 저를 성장시킨 것은 모든 일이 잘 풀렸던 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 실패, 좌절을 지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이런 질문을 마음에 담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
보다는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렇다고 고통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한 가지 조심하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모든 고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질병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감당하기 어려운 실패처럼 아무리 의미를 찾으려 해도 힘든 일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그 고통은 당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온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오히려 잔인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세네카의 이야기가 의미 있었던 것은 고통 자체가 좋은 것이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 내 삶에 찾아왔을 때 그것이 내 인생을 완전히 무너뜨리도록 둘 것인지, 아니면 그 안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였습니다.
고통을 선택할 수는 없어도, 고통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손주에게도 모든 돌을 치워주지는 말아야겠다
이 생각은 다시 손주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손자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도 힘든 일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할머니인 제가 그 길의 모든 돌을 미리 치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넘어지지 않는 아이로 만드는 것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랑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이가 넘어졌을 때 돌아보면,
“괜찮아. 다시 해봐.”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60대가 되어 생각하는 ‘잘 산다는 것’
책을 덮고 나니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나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예전에는 성공이나 성취가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건강하게 지내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책을 읽고, 여행하고, 걷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손자와 놀면서 함께 웃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제가 하고 싶은 일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나중에’라는 말 때문에 오늘을 놓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늘을 제대로 사는 것
《세네카,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를 읽고 제가 얻은 것은 거창한 철학적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몇 가지 단순한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곳에 사용하고 있는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성장할 기회까지 빼앗고 있지는 않은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60대가 된 지금 저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오늘을 잘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충분히 사랑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너무 오래 미루지 않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찾아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세네카가 2천 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제게 전해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부터 그렇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