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가 생긴다는 것은 참 특별한 경험입니다.
조그마한 아이가 웃고, 걷고, 말을 배우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저 역시 지금 20개월 된 손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들이 지방에서 근무하게 되어 맞벌이하는 며느리의 육아를 돕기 위해 손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손자와 함께하는 시간은 제게 많은 행복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손주를 돌보며 사는 것이 좋은 걸까? 아니면 이제는 나 자신의 삶을 더 즐겨야 하는 걸까?”
아마 손주를 돌보고 있는 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한 번쯤 해보는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손주를 돌보는 행복은 분명히 있다
손주와 함께하면 평범했던 일상이 달라집니다.
아이가 처음 걷는 순간, 새로운 말을 배우는 순간,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보고 달려오는 순간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자녀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안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보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손주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만들어지는 관계는 나중에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손주를 돌보는 시간이 결코 ‘희생’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 역시 손주에게서 사랑과 웃음, 새로운 활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인생도 아직 진행 중이다
반대편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50대, 60대는 누군가를 위해서만 살아야 하는 나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를 키우고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 많은 시간을 보낸 뒤, 비로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여행도 하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습니다.
책을 읽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을 수도 있고, 일을 계속하거나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 일정 없이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손주를 돌보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사랑으로 시작했던 일이 의무가 되고, 내 시간과 건강을 계속 포기해야 한다면 행복했던 마음에도 조금씩 부담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맞을까?
저는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주를 돌보면서 행복하다면 그것 역시 내가 선택한 좋은 삶입니다.
반대로 여행하고, 배우고, 운동하고, 친구를 만나면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충분히 좋은 삶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할머니, 좋은 할아버지’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손주를 돌보는 것과 내 삶을 사는 것을 서로 반대되는 선택으로 볼 필요도 없습니다.
‘손주와 함께’와 ‘나의 삶’ 사이에 경계를 만들자
제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시간의 경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손주를 돌봐주는 시간과 부모가 책임지는 시간을 어느 정도 구분하고, 그 안에서 가족이 서로 역할을 나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날은 손주와 하루를 보내고, 어떤 날은 운동을 하거나 친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행 계획이 있다면 미리 가족과 이야기해서 그 기간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경계가 있어야 손주를 만나는 시간이 의무가 아니라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오래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도 중요한 기준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강입니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체력이 필요합니다. 안아주고, 따라다니고, 밥을 먹이고, 놀아주는 일이 반복됩니다.
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손주를 돌보는 것은 결국 가족에게도 좋은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손주를 잘 돌보기 위해서라도 운동하고, 잘 먹고, 쉬고, 내 건강을 챙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나를 위한 시간’과 ‘손주를 위한 시간’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가능하게 해주는 관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손자와 함께 살면서 참 많은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제 삶을 모두 손주 육아에만 맞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건강을 관리하고, 배우고,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삶도 계속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삶 속에 사랑하는 손자가 함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고 싶은 답은 ‘손주냐, 나냐’의 선택이 아닙니다.
손주와 함께 행복하면서도, 나 자신의 삶을 잃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손주와 오래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희생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나 자신의 삶 사이에서 나에게 맞는 균형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균형은 사람마다 달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